관광인 여행 .... 500. 충남 당진시의 성 김대건 신부
관광인 여행 .... 500.
충남 당진시의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
당진 :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
본관은 김해. 아명(兒名)은 재복(再福), 보명(譜名)은 지식(芝植), 세례명은 안드레아. 대건은 관명(冠名)이다. 충청남도 내포(內浦) 솔뫼(지금의 당진)에서 태어났다. 증조할아버지 진후(震厚)는 1814년 충청남도 해미(海美) 옥중에서 순교. 아버지 제준(濟俊)은 1839년 기해박해(己亥迫害) 때 한양 서소문 밖에서 순교했다. 이같은 순교자의 집안에서 자라난 김대건은 1831년 조선교구 설정에 이어 1836년 조선인 성직자 양성을 목적으로 적합한 소년을 물색하던 모방(Pierre P. Maubant) 신부에 의해 선택되었고, 유방제(劉方濟) 신부편에 마카오로 보냈다. 1841년 9월 김대건은 프랑스 군함에 동승하여 만주로 향했다. 1842년 12월에는 압록강을 넘어 평안도에 진입했으나 여러 어려움을 겪다가 결국 다음해 1월 만주로 되돌아오고 말았다.
1845년 4월 배편으로 중국 상하이(上海)로 건너갔다. 여기서 김대건은 페레올 주교로부터 8월 17일에 신품성사(神品聖事)를 받았다. 이로써 한국인 최초의 신부가 탄생하게 된 것이다. 10월에는 배편으로 페레올 주교를 모시고 조선으로 향하여 천신만고 끝에 강경 황산포(黃山浦) 부근의 나바위에 상륙했다. 1846년에는 아직 만주에 머물고 있는 메스트르 신부 등의 입국을 위해 서해안 길을 개척하다가 6월에 순위도(巡威島)에서 체포되었다. 옹진군 감옥을 거쳐 해주감옥에서 황해감사로부터 심문을 받고 "조선에서 출생하여 마카오에서 성장하고 천주교를 펴기 위해서 귀국했다"는 사실을 자백했다.
당진 : 성 김대건(金大建 안드레아, 1821~1846) 신부
그동안 권세를 누리면서 천주교 박해에 앞장서 왔던 풍양조씨의 세도가 막을 내리는 등 큰 권력변동이 있었기 때문에 김대건 등의 옥사가 크게 중시되지 않았다. 그러나 기해박해 때 프랑스인 신부 3명이 처형된 것에 항의하기 위해 1846년 프랑스 함대가 충청도 홍주 앞바다에 기항하고 조선국 정대감 앞으로 된 문책서를 전달하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에 크게 놀란 조선정부는 그의 처형을 결정했고, 마침내 김대건은 같은 해 9월 16일 새남터에서 순교했다. 이후, 1925년 교황 피우스 11세에 의해 복자위(福者位)에 올랐고, 1984년에는 103인 성인의 하나로 선포되었다. 한편, 2019년 유네스코 제40차 총회에서는 김대건을 2021년 세계기념인물로 선정했다. 2021년은 김대건 탄생 200주년이 되는 해이다. 유네스코 세계기념인물은 유네스코가 추구하는 이념과 가치에 일치하는 역사적 인물, 사건, 기념일을 선정해 그 중요성을 알리고자 하는 목적으로 2004년부터 시작되었다. (다음백과)
가실 때 아래 ♡ 공감 꾹 눌러주세요~~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