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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 454.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파발(擺撥)

공룡우표매니아 2021. 7. 4. 03:00

관광인 여행 ..... 454.   

서울특별시 은평구의   파발(擺撥)

 

서울은평 : 파발(擺撥)

  조선은 본래 군사 통신제도로서 봉수제를 갖추고 있었으나, 임진왜란을 치르면서 파발제의 필요성을 느끼고 1597년(선조 30)에 이를 설치하게 되었다. 파발에는 말을 타고 연락하는 기발과 사람이 속보로 걸어서 연락하는 보발이 있었다. 이중 기발은 25리마다 참을 설치하고 매참에 발장 1명, 색리 1명, 파발군 5명, 말 5필을 두었다. 보발은 30리마다 참을 두고 발장 1명과 파발군 2명을 배치했다. 파발은 서울에서 의주에 이르는 서발, 서울에서 경흥까지의 북발, 서울에서 동래에 이르는 남발 등 3대로를 중심으로 정비되었다. 참의 설치 수는 〈만기요람〉에 따르면 서발에는 직로에 38참(경기 7참, 황해도 13참, 평안도 18참)을 두고 사잇길에 48참(평산에서 해주까지 5참, 박천에서 압록강변 여러 고을까지 43참)을 두었다. 북발에는 직로에 64참(경기도 3참, 강원도 6참, 함경도 55참), 사잇길에 10참(북청에서 삼수까지 10참)을 두었다. 남발은 직로에 34참(경기 9참, 충청도 5참, 경상도 20참)을 두었다.

서울은평 : 파발(擺撥)

  서발, 북발, 남발 중 서발의 직로만이 기발이고 나머지는 모두 보발이었다. 파발은 일의 완급을 나타내는 방울을 달아 전송했는데, 방울 셋을 단 3현령은 긴급사태를 의미했다. 보통은 하나를 달고, 이보다 급한 일은 2개를 달았다. 늦게 전송한 자나 문서를 파손하거나 훔친 자는 법규에 따라 엄벌에 처하였다. 그러나 실제로는 문서 전송이 지체되는 경우가 많았다. 발전(撥傳 : 파발로 전하는 것)이 지체된 이유는 발마의 남기(濫騎)와 그로 인한 피폐, 심지어는 사문서의 전달까지도 파발을 이용해, 발군이 고역에 시달리고 급기야 도망치는 일이 빈번했기 때문이다. 한편, 국가의 기밀이 엄수되어야 할 공문서를 훔쳐보는 사례가 있어 기밀이 누설되는 폐단도 많았다. 이러한 파발제는 역(驛)과 봉수제와 함께 조선시대 군사 통신체제의 골격을 이뤘다. 그러나 조선 말기의 전화전신 통신체제의 발달로 그 제도적 전환점을 맞이하게 되었다. (다음백과. 한국민족문화 대백과사전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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