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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광인 여행 .......337. 경남 창원시의 이순신장군과 군함

공룡우표매니아 2020. 10. 12. 03:00

관광인 여행 .......337.

경남 창원시의 이순신장군과 군함

진해 : 경남 창원시의 이순신장군과 군함

  1565년(명종 20년), 20세의 이순신은 상주 방씨(尙州方氏)와 혼인하여 훗날 이회, 이울, 이면 등 아들 셋과 딸 하나를 얻는다. 그로부터 5년 뒤인 1572년(선조 5년) 8월, 훈련원별과에 응시했지만 시험 도중 낙마로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를 당하여 낙방하고 말았다. 첫 번째의 참담한 실패 이후 절치부심한 그는 4년 뒤인 1576년(선조 9년) 2월, 드디어 31세의 늦은 나이로 식년무과에서 병과로 급제했다. 그때부터 무관 이순신의 파란만장한 관직 생활이 시작된다.

  고대하던 무관의 꿈을 이룬 이순신은 그해 12월 함경도의 험준한 요새인 동구비보(董仇非堡)의 권관(權管)으로 발령받았다. 권관이란 당시 변경의 진보(鎭堡)에 두었던 종9품 무관직이었다. 그 무렵 유성룡이 사람을 보내 동개〔櫜鞬, 활집〕를 빌려달라고 하자, “이것은 빌리자는 말인가, 바치라는 말인가.” 하며 거절했다. 그 말을 전해들은 유성룡이 몹시 흡족해 하면서 장차 그를 발탁하기로 결심했다고 한다. 당시 조선 최고의 장수로 손꼽히던 이일은 그런 여진족의 발호를 용납할 수 없었던지 1588년(선조 21년) 1월 2,5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여진족의 근거지를 급습하여 200여 채의 가옥을 불사르고 380여 명을 사살했다. 이때 이순신도 함께 참여하여 전공을 세움으로써 백의종군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진해 : 경남 창원시의 이순신장군과 군함 

  1598년(선조 31년) 11월 19일 이순신은 철수하려는 왜군을 노량 앞바다에서 막아섰다. 그리고 적탄에 맞아 치열한 53년의 생을 접었다. 그와 함께 7년 동안 이 땅을 피로 물들였던 잔혹한 전쟁도 끝났다. 이순신의 전사 소식을 들은 선조는 관원을 보내 조상하고 충무(忠武)라는 시호를 내렸다. 그가 남긴 《난중일기》는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76호로 지정되었고, 2013년 6월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실록에서는 그의 죽음을 이렇게 평가하고 있다. 그의 단충(丹忠)은 나라를 위하여 몸을 바쳤고, 의를 위하여 목숨을 끊었다. 비록 옛날의 양장이라 한들 이에 더할 수 있겠는가. 애석하다. 조정에서 사람을 쓰는 것이 그 마땅함을 모르고, 순신으로 하여금 그 재주를 다 펼치지 못하게 했구나. 병신년, 정유년 사이 통제사를 바꾸지 않았던들 어찌 한산도의 패몰을 초래하여 양호 지방이 적의 소굴이 되었겠는가. 그 애석함을 한탄할 뿐이다.  (한국사 인물열전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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